2015년 9월 2일 수요일

융기원의 인턴생활, 내 대학생활의 핵추억 ㅣ 김서현(성균관대학교)

▲2015 하계인턴에 참여한 김서현 학생 (성균관대학교 생명과학/심리학)


버스를 타고 학교를 가다 보면 항상 창밖에 광교의 풍경이 쭉 펼쳐진다. 아무 관련도 관심도 없는 것에 사람은 참 무신경해서 지난 4년간 창틀 너머로 매일 광교를 지켜봤지만 머릿속에 남는 이미지는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두 달간의 인턴을 끝내고, 요즘은 굉장히 새로운 느낌으로 등굣길 창밖을 바라보게 된다. 아무 의미 없던 8차선 도로가 자꾸 눈에 밟히더니 낯익은 맥도날드가 보이고 매일아침 라지사이즈 아이스커피를 사러가던 내 모습이 떠오른다. 그 뒤로는 늘 어휴 크다 라고만 생각했던 차세대융합기술연구원 건물이 보이는데 그 안에서 오늘도 미간을 살짝 찡그리고 동분서주하고 있을  '사용자경험연구실(UX Lab)' 식구들이 떠올라서 나 혼자 뭔가 흐뭇해지기도 한다. 어느새 추억이 된 두 달간의 일상을 되새김질하고 그때의 느낌과 경험을 되짚어보는 기분이 오묘한 요즘 아침이다. 

두 달간 인턴을 한 사용자경험연구실은 항상 사람에 의한, 사람을 위한, 사람을 향한 연구가 진행되는 곳이다. 특히 스마트폰과 다양한 IoT 기기들을 사용한 사용자 로그를 기반으로 헬스케어 분야에서 심층적인 사용자 분석과 행동 패턴 도출, 서비스 기획 등 다양한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인턴 기간 동안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정말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상반기 ‘핫’한  UX트렌드를 모아보고 함께 이야기해보는 UX S/S collection, 매주 진행했던 ‘우리는 어떻게 바뀌고 있는가’ 책 발제,  신입생 언니와 함께한 경험리서치,  분당 서울대병원을 오가며 진행된 PHR(personal health record)프로젝트까지. 더불어 다양한 워크숍에도 참여할 수 있었다. 매년 열리는 워싱턴 대학 학생들과의 하계 워크숍,  융합과학기술대학원 디지탈정보융합전공내의 랩들이 함께하는 워크숍, 그리고 처음으로 열린SNU HCI 워크숍에 참여하는 소중한 기회도 얻었다.  


랩미팅에서 프로젝트 진행상황을 발표하고 있는 PHR팀

이 중 무엇보다 기억에 남는건 경험을 분석하고 손질하고 재구성하는 과정을 전체적으로 체험할 수 있었던 ‘경험리서치’다.  여러가지 경험을 수집하고 분석하는 방법을 익히고, 우리에게 익숙한 경험을 잘게 쪼개보고, 그 속에서 경험의 눈으로 개선점을 읽어내 다시 새로운 경험을 구축해 서비스 프로토타입까지 만들어보는 과정이었다. 우리팀은 ‘새로운 숙박 서비스’를 주제로 기존의 호텔숙박 경험과 에어비엔비의 경험을 비교하고 분석해보고 ‘tagtrip’이라고 이름 붙인 새로운 숙박 검색 서비스를 기획했다. 처음에는 경험의 본질을 뽑아내는 것, 사용자의 시각에서 경험을 이야기하는 것, 경험을 객관화하고 경험의 언어로 표현하는 것 등 연구실 언니 오빠들과 교수님이 정성 어린 조언을 해 주셔도 내가 이렇게 바보였나 싶을 정도로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매주 랩미팅 시간에 부딪치고 깨지며 정말 조금씩 그 동안의 말들이 마음으로 와 닿기 시작했던 것 같다.  

정말 재미있었지만 힘들기도 했다. 새로운 경험을 만든다는 게 얼마나 세밀한 관찰력과 손길이 필요한 일인지 경험리서치를 통해 뼈저리게 느꼈다. 우리가 그냥 당연하게 주어진 것으로 알고 사용하는 괜찮은 제품과 서비스, 디자인 하나 하나가 다 얼마나 우리를 생각하고 만들었을지, 만든이들의 노고를 생각할 줄 아는 착한 마음을 한동안 지닐 수 있었다. 랩미팅에서 발표를 마치고, 기진맥진해서 후쿠오카 함바그를 먹으러 갔을 때도 함바그를 직접 잘라 구워 먹는 이 색다른 외식 경험을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골머리를 싸맸을까 중얼거리며 한층 더 감사한 마음으로 먹고는 했다. 
분당서울대병원을 오가며 진행되었던 PHR프로젝트는 실제 사용자조사가 이루어지는 과정 뿐만 아니라 여러 분야의 사람들이 한데 모여 협력하는 과정을 엿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유방암 환자들의 재활을 돕는 건강관리 서비스를 기획하기 위해 의료진과 서비스 플랫폼업체, 사용자경험 연구실이 모여 매주 회의하는 과정에서 서로 다른 분야 사람들이 어떻게 함께 소통하고 도움을 주며 하나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지 엿볼 수 있었다.  

랩미팅에서 프로젝트 진행상황을 발표하고 있는 PHR팀
일 외의 기억도 정말 많다. 같이 인턴을 한 오빠가 과거에 프로게이머로 활약했던 경력이 있어서 교수님의 제안으로 랩미팅이 끝나고 유엑스랩 스타리그를 열기도 했다. 욱재오빠의 찰진 해설과 더불어 진행된 경기는 인턴 오빠의 압승으로 7분여 만에 끝났다. 연구실 오빠의 차를 타고 핫도그 쇼핑 겸 드라이브를 다녀오는 길에 입에는 세상에서 제일 맛있었던 핫도그 향을 품고 귀로는 마법의 성을, 눈으로는 노을지는 광교 호수를 바라보며 왠지 모를 촉촉한 행복감에 잠겼던 기억도 난다.  지은언니가 늘 끊임없이 공급해주는 키켓으로 당분을 유지하며 함께 밤새 발표를 준비하고, 꾸벅꾸벅 졸며 초록버스를 타고 서울대병원으로 향하던 찌들어 있던 모습들도 지금은 시간의 흐름을 타고 살짝 아련하게 왜곡되어 참 아름답게 느껴진다.

워싱턴 대학생들과 함께했던 워크샵도 유쾌했다. 학생들이 함께 팀을 이뤄 한국/미국 학생들의 사진촬영&관리 행태를 비교해보았는데, 뭔가 흥미진진한 문화적 차이가 발견될 것 같았던 나의 부푼 기대와는 다르게 우리 조는 아무도 사진찍기에 취미가 없어서 얘기할 거리가 하나도 없었다. 또 워싱턴 대학 학생들과 아메리칸 스타일로 피자를 먹으며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서로 취미를 물어보는데 취미가 거의  컴퓨터 게임이고 한국의 피씨방 문화를 제일 궁금해하는 귀여운 컴덕 남학생들을 보며 미국 학생들도 다 우리와 똑같은 21세기 인터넷 시대의 학생들이라는 걸 실감했다. 먹으면서 영어 하느라 체할 것 같긴 했지만 즐거운 시간이었다. 

사용자경험 연구실에서의 2달이 어떤 시간이었는지 누군가 물어보았을 때, 새벽 감성을 조금 첨가해서 대답한다면 이렇게 말하지 않을까. 사용자 경험 연구실에서의 2달은 굳어있던 내 뇌를 깨워준 모닝커피 같은 시간이었다. 4년간 대학에서 나름대로 열심히 공부했지만 내가 내 뇌를 적극적으로 쓰고 있다는 느낌을 받은 적은 별로 없었다. 하지만 유엑스랩에서는 두 달간 정말 좌뇌와 우뇌를 가리지 않고 김 날 때까지 열심히 마사지를 한 기분이다. 완전히 새로운 환경, 새로운 사람들, 생각해보지 않았던 새로운 주제들 속에 빠져 있을 수 있었고 내가 항상 하던 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사고하고 고민하는 법을 익혔다. 물론 과다한 모닝커피의 부작용으로 머리가 좀 아프고 가끔 잠을 덜 자는 부작용도 있었지만. 

뜬구름 같은 변화 말고 좀 더 피부로 와 닿는 현실적인 변화를 말하자면 인턴 후에 나는 어디든지 맥북을 들고 다니기 시작했고, 팀플 할 때 ‘저는 프레젠테이션을 만들겠습니다’ 할 자신감이 생길 정도로 키노트에 익숙해졌으며, 뭔가 새로운 경험을 했을 때 나도 모르게 메모장에 노트를 하고 사진을 찍고 혼자 뿌듯해 하는 습관이 생겼고, 사용자경험이 뭐야? 하고 사람들이 물어보았을 때,  음…..그건 설명하기 어려운데 말야…..음….. 하면서 어느 정도 어렴풋이 설명할 수 있는 경험과 지식이 생겼다. 

그리고 진부한 말이지만 정말 진심을 담아,  2달간의 인턴생활이 내게 남긴 가장 소중한 것은 바로 사람들이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가족처럼 늘 신경 써주고, 함께 놀아주고, 밥 먹고, 머리를 싸맸던 유엑스랩 식구들과 교수님 같이 인턴했던 언니 오빠에게 정말 고맙다는 말과 제가 많이 좋아한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인턴 마지막 날 선물로 주셨던 인사이드 아웃 인형 3개가 신통방통하게도 내 인턴생활을 정확히 표현하고 있다. 때때로 나는 너무 부족하다는 자괴감의 슬픔에 빠지기도 했지만, 이번 여름 인턴은 언제 돌이켜보아도 기쁘고 즐거운 추억, 내 대학생활의 핵추억(핵심추억)이 된 것 같다!

인턴 선물로 받은 인사이드아웃 인형





0 개의 댓글:

댓글 쓰기

차세대융합기술연구원 │ 서울대학교 융합과학기술대학원. Powered by Blogg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