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gure 1. Jean Raoux, Pygmalion adoring his statue, 1717 ©Musée Fabre |
로마 시대 오비디우스(Ovid)의 유명한 저작인 ‘변신(Metamorphoses)’에는
자신이 만든 조각 여인상과 사랑에 빠진 한 남자의 이야기가 나온다. 조각가였던 그는 상아로 만든 것
같이 아름다운 여인상을 만들고 나서 곧바로 사랑에 빠졌다. 예쁜 옷과 보석을 구해서 이 완벽한 조각상을
장식하며 연인처럼 날마다 쓰다듬고 속삭였다. 마침내 남자는 아프로디테 축제에서 소원을 빌었다. 집에 있는 상아 여인상이 정말 살아있는 여인이 되어 결혼하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하고 집에 돌아와서 습관처럼
조각상을 쓰다듬었다. 그러자 차가운 조각상은 차츰 온기를 내면서 살아있는 여인으로 변신했다. 가장 아름다운 존재와 결혼한 그 남자의 이름은 퓌그말리온(Pygmalion)이다.
Figure 2. Illustrations from Automata Theater by Hero of Alexandria in the book Herons von Alexandria edited by Wilhelm Schmidt in Leipzig in 1889. Captured images from the book. |
로봇의 역사에서 가장 첫머리에 등장하는 신화가
바로 퓌그말리온의 이야기다. 사물이 인간처럼 살아 움직이는 존재로 변신하는 것 자체를 로봇의 기원으로
바라보기 때문이다. 인류는 아주 오랫동안 로봇의 탄생을 꿈꾸며 많은 실험과 도전을 시도해왔다. 오비디우스의 저술에 앞서 알렉산드리아의 헤론(Heron)은 고대
그리스 시대의 공학기술을 집대성하면서, 로봇 같은 장치가 움직이며 20분간
지속되는 공연 무대를 만들었다. 그는 중력과 수력, 증기처럼
자연에서 얻을 수 있는 에너지를 천재적인 솜씨로 재가공하여 마치 컴퓨터 알고리즘으로 움직이는 것처럼 조각상들의 동작을 이리저리 바꾸는 변신을 보여주었다.
Figure 3. Wolfgang von Kempelen, A Replica and Illustration of the Chess Automaton 1770. |
르네상스 시대의 다양한 발견과 발명에 힘입어 헤론의
연구서들은 유럽 각국의 언어로 번역되었고, 그 영향은 오랫동안 유럽의 공학 발전에 기여했다. 특히, 18세기 프랑스의 자크 드 보캉송(Jacques de Vaucanson)은 기계 오리가 모이를 쪼아먹고, 소화하여
배설하는 동작을 보여주는 장치를 선보였는데, 당시 사람들에게는 기술의 충격 그 자체였다. 그로부터 10여년 뒤에는 합스부르크 왕가의 궁정기술자였던 볼프강
폰 켐펠렌(Wlofgang von Kempelen)이 체스 두는 로봇 장치를 만들어서 다시 한번 세상을
놀라게 했다. 체스 플레이어(Chess Player)으로
불렸던 이 장치는, 터기 사람처럼 생긴 오토마톤(automaton)이
실제 사람을 대상으로 정교한 체스 게임을 펼치는 것이었는데, 체스 말을 잘못 움직이는 인간의 실수까지
바로잡아 주면서 거의 모든 게임에서 승리했다고 한다. 나중에 밝혀진 바로는, 체스 전문가가 고용되어 체스판 밑에 들어가 손으로 오토마톤을 조종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공지능과 햅틱 인터페이스(haptic
interface)가 개발되기도 훨씬 전에 로봇 장치를 살아 있는 것처럼 움직이면서 관객의 상호작용(interaction)을
극대화시킨 것만으로도 대단한 성과였다.
Figure 4. Jean Tinguely, Homage to New York, Museum of Modern
Art, New York, 1960. Photo © Cloud farm
|
Figure 5. Nam June Paik and Shuya Abe, Robot K-456, 1964. Photo © Peter Moore |
20세기
중반, 헤론과 켐펠렌의 후예들이 다시 예술의 무대에 등장했다. 스위스의
장 팅겔리(Jean Tinguely)는 원형으로 회전하는 모터의 운동에 불규칙성을 적용하여 항상 다른
형태로 움직이는 키네틱 아트(Kinetic Art) 작품들을 선보였다.
끊임없이 다른 그림을 그려내는 메타마틱(Metamatic) 시리즈를 비롯하여, 1960년에는 움직일수록 스스로 파괴되는 작품 ‘Homage to New
York’을 뉴욕 현대미술관에서 선보였다.
비디오 아트로 유명한 백남준은 무선조종기로 움직이는 휴머노이드(humanoid) 로봇 작품을 만들어서 1964년에 뉴욕 시내를 함께 활보하며 즉석 공연도 열었는데, 안타깝게도 로봇 ‘K-456’은 횡단보도를 건너다가 차에 치여서 사망(?)하고 말았다. 백남준은 낙담하지 않고, 오히려 “세계 최초의 인간과 로봇의 교통사고”라며 위안을 삼았다고 한다. 이렇게 예술가들은 공학기술의 눈부신 발전을 새로운 예술작품으로 변모시키며, 오랫동안 융합을 실천해왔다.
비디오 아트로 유명한 백남준은 무선조종기로 움직이는 휴머노이드(humanoid) 로봇 작품을 만들어서 1964년에 뉴욕 시내를 함께 활보하며 즉석 공연도 열었는데, 안타깝게도 로봇 ‘K-456’은 횡단보도를 건너다가 차에 치여서 사망(?)하고 말았다. 백남준은 낙담하지 않고, 오히려 “세계 최초의 인간과 로봇의 교통사고”라며 위안을 삼았다고 한다. 이렇게 예술가들은 공학기술의 눈부신 발전을 새로운 예술작품으로 변모시키며, 오랫동안 융합을 실천해왔다.
그러나 아직도 사람들은 기계장치가 예술 작품으로 승화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다. 캐나다 퀘벡 출신의 유명한 연출가 로베르 르파주(Robert Lepage)가 키네틱 무대장치로 재구성한 오페라 ‘니벨룽겐의 반지’를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극장에 선보였을 때, 토마시니(Tommasini) 같은 비평가는 “널빤지가 돌아가는 유치하고 괴상한 재해석”이라며 뉴욕 타임즈에 혹평을 기고했다.
그의 눈에는 성스러운 바그너의 오페라를 기계장치로 모독했다고 보였겠지만, 많은 관객들은 공학과 예술이 융합된 새로운 시도에 환호했다. 융합의 길은 먼저 깨달은 소수가 다수를 품기 위해서 내딛는 고된 발걸음으로 열어가는 것이다. 무엇인가를 간절히 소망하면 이루어진다는 것을 ‘퓌그말리온 효과’라고 한다. 차가운 조각상을 따뜻한 인간으로 변신시킨 퓌그말리온처럼 지금 이 순간에도 예술과 공학의 교차로에서 새로운 예술가들이 태어나고 있다.
글:
오창근 연구원
(디지털휴먼연구센터)
artopera@gmail.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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