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정영찬 학생(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 디지털정보융합)
"인도에서 인턴을 한다고? 너가 거기서 뭘 하는데?“
지난겨울, 인도 웨스트 벵갈 주에 위치한 NGO에서 병원 정보화와 청각장애 아동 교육 디바이스를 연구 주제로 약 2달간 인턴쉽을 수행했다. NGO는 비정부기구의 봉사활동기관이다. 처음 인턴쉽 활동을 인도에서 하겠다고 말을 꺼냈을 때 내 말을 들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해가 안 간다는 반응이었다. 그리고 그 다음에 이어지는 건 호기심 섞인 걱정들이었다. 먹을 것은 어떻게 해결할지, 숙소는 어떠한지, 치안이 좋지 않다는데 안전하기는 한 것인지...
생각보다 안전하다고, 이미 몇 번 방문했던 곳이라고 이야기하며 안심시켰지만 사실 나도 걱정되긴 마찬가지였다. 여행은 많이 다녔어도 거의 두 달에 가까운 시간을 해외에서 거주해본 경험은 없었던 데다가, 지난해부터 인도 현지의 치안이 더욱 불안해지고 있어서였다.
하지만 나는 말로만 연구하고 싶지 않았다. 주변의 걱정과 나의 불안함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가서 보고 배워야한다고 생각했다. 지난 몇 년간 개발도상국을 위한 정보통신기술을 연구한다고 하면서, 여름엔 시원하고 겨울엔 따뜻한 서울의 카페에 앉아 책을 읽고 논문의 한 페이지씩을 채워나갔던 것이 적잖이 불편했다. 그래서 가야겠다고 생각했고, 살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정말 감사하게도, 전례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인도 현지 NGO에서 인턴쉽 하는 것을 학교와 지도교수님께서 허락해주셨고 생애 다시없을 배움을 경험하고 올 수 있었다.
인도 현지 선생님과 함께 PC를 점검하는 정영찬 학생 |
1. 주요 활동은? - 청각장애 아동 교육과 현지 병원의 진료과정 조사
인턴쉽 활동의 모태가 된 프로젝트는 이중식 교수가 이끌고 있는 shadia팀이 2010년부터 올해까지 진행했던 ‘Project for Technology Underserved’이다. 이 프로젝트는 기존의 국제기술원조 프로젝트가 단순히 현지에 기술이나 기기를 배달하고 왔던 것에 대해 비판을 제기하고 과학기술원조의 지속성과 자립성, 효용성을 높이기 위한 방법을 연구하고 실천해왔다. 또한 인도 웨스트벵갈 주에 최대 NGO로 성장한 SHIS(Southern Health Improvement Samity)와 협력해 진행한 프로젝트로, 제품 제작보다 현지 조사를 더 길게 하고, 한 번에 완성하지 않고 프로토타입을 기반으로 반복 수정 제작해 제품을 보급했다.
이러한 배경에서 인턴쉽 활동은 지난 1, 2월 6주간, 주 7일, 오전 8시부터 밤늦게까지 진행했다. 크게 1) 안과병원의 전자의료기록(EMR) 시스템 개발을 위한 진료 프로세스 조사 및 팩트북 제작 2) 청각장애 아동들의 발성교육을 위한 아두이노 디바이스 개발 및 사용성 테스트 3) 안과병원 간호사 컴퓨터 타이핑 및 오피스 교육의 3가지 활동을 수행했다.
처음부터 혼자서하기에 조금 많은 일을 가지고 들어갔지만, 그래서 정신없이 보낼 수 있었고, 더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울 수 있었다. 지금도 도움주신 SHIS기관 여러분께 감사드린다.
내 인턴쉽은 회사에서 진행한 게 아니라서, 전후로 연계해 준비할 수 있었다. 그래서 현지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좀 더 적합한 기술을 도출하고 개발하기 위해, 현지 활동 전에 2달간 활동을 준비했고, 6주의 현지 활동을 마친 후, 6개월의 후속 연구를 진행했다. 또한 대학원 내 'BK21플러스 스마트휴머니티 융합프로젝트'를 통해 shadia팀도 함께 참여했다. 팀원들에게도 깊은 감사를 전한다.
아두이노 디바이스를 이용해 발음 교육을 받는 청각장애 아동 |
2. 보고 느낀 3가지 경험.
보고 느낀 바가 많아 아직도 정리가 잘 되지 않지만, 문화적 요소나 국가의 대한 인상보다 개발도상국과 과학기술원조에 관련된 경험을 중심으로, 인상 깊었던 3가지 에피소드를 통해 활동에서 배운 점을 정리해보고자 한다.
1) 디지털 리터러시 이전에 정보 리터러시가 있다.
컴퓨터는 만능도구라고 하지만, 그래도 도구라서 사용자가 필요하다. 그래서 사실 컴퓨터를 보급하더라도 사용자가 정보 행동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어렵다.
현지 NGO는 대한민국 면적만한 지역 전체를 대상으로 종합 병원과 안과 병원을 비롯해 수십 개의 지점, 몇 개의 학교, 수 개의 프로젝트가 한 데 얽혀 돌아가는 비교적 큰 조직이라, 관리해야 하는 정보의 양도 어마어마 했다. 그래서 다들 정보화를 원했고 어느 정도 진행하고 있었다. 그러나 1달여간의 조사 결과, 나는 ‘컴퓨터 보급 확대’와는 다른 결론을 내렸다.
현지 기관에는 컴퓨터보다 정보 활용 교육이 먼저 필요했다. 중복 기록, 잘못된 분류, 공유되지 않는 개인화된 인덱스 등 정보 활용에 대한 지식 부족은 컴퓨터를 보급한다고 해서 사라지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실제로 병원에는 컴퓨터가 몇 대 보급되어 사용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문제가 여전히 반복되고 있었다. 결과적으로 컴퓨터 교육이 문제가 아니라, 정보 교육이 중요하다고 느꼈다.
안과 병원 간호사들을 대상으로 수행한 오피스 교육 |
2) ‘무엇’보다 ‘왜’와 ‘어떻게’가 중요하다.
“이건 왜 쓰고, 어디에 써요?” 처음 컴퓨터 교육에 들어갔을 때 학생이 질문했던 내용이다. 컴퓨터는 당연히 중요하고 좋은 것이라고 대답하려다보니, 나조차도 궁금해졌다. 우리는 이 도구를 왜 사용하지? 그리고 이들은 이 컴퓨터를 왜 배우고 써야하지?
컴퓨터와 컴퓨터화 된 주변 환경에 매몰되어 살아가는 한국인의 입장에서 볼 때는 어색하고 불편해 보이겠지만, 여기 사람들은 그동안 컴퓨터 없이도 잘 살아왔다. (사실 우리도 그랬었다.) 기술원조에서 가장 흔하게 범하는 실수가 여기에 있다. ‘컴퓨터는 중요하고 좋은 것이니까, 개발도상국에 필요할 것이다. 잘 사용할 것이다.’ 이런 전제의 오류로 수많은 자원이 낭비됐다.
우리가 과제나 업무를 할 때를 제외하고 얼마나 PC의 전원을 켜는지 생각해보자. 우리는 컴퓨터로 무엇을 하지? 만약 업무와 과제가 손으로 쓰는 것이었다면 나는 컴퓨터를 얼마나 썼을까? 혹시 컴퓨터를 써야만 해서 써온 것은 아닐까.
여기서 중요한 것은 컴퓨터가 필요 없다는 게 아니다. 컴퓨터는 그 태생부터가 전용 도구가 아니라 범용 기계다. 즉, 어느 용도로나 사용할 수 있다는 이야기인데 그 말은 어떤 용도로 쓸지에 대한 생각을 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원래부터 컴퓨터가 없이 잘 살아왔던 사람들에게 컴퓨터는 단지 하나의 추가적인 가전제품일 뿐이다. 그 사양에 대해 고민하기 전에 생각해야 할 지점은, 그들의 생활 환경을 바탕으로 어떤 경우에, 왜 써야하는지를 고민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걸 쓰면 어떤 점이 좋을지에 대해 함께 고민하는 게 중요했다.
그래서 내가 했던 대답은 “홍보할 때, 포스터 손으로 다 써야하니까 시간도 오래 걸리고 힘들잖아. 그리고 매번 새로 만들어야 하고. 근데 이걸 쓰면 한번만 만들면 반복해서 사용할 수 있고, 심지어 쉽게 수정할 수도 있어. 그럼 일 빨리 끝내고 더 쉴 수 있겠지?” 였다.
3) 컴퓨터를 처음 배우는 학생들이 가장 먼저 하고 싶어 했던 일은?
컴퓨터 교육이 시작되고 며칠 지나지 않아, 몇 명의 학생들(간호사)이 나를 찾아와 손짓 발짓을 섞어가며 물었다. 컴퓨터로 음악을 듣고 싶은데, 어떻게 할 수 있냐는 물음이었다. 지금까지 인도에 5번 정도 방문해 활동을 진행했는데, 누군가 컴퓨터로 무엇을 하고 싶다고 말한 것은 처음이었다. 수업 시간에 다시 이야기를 해보니, 모두들 컴퓨터를 배우면 음악을 들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을 갖고 있었다. asdfjkl로 시작하는 타이핑 교육의 커리큘럼을 계획하고, 성취 평가를 어떻게 할지 고민하고 있었던 내게, 음악에 대한 요구는 생소했다.
돌이켜보니, 내가 지금까지 컴퓨터를 사용하며 했던 일 중 ‘내가 하고 싶어서’ 한 일은 1) 영화보기 2)음악 다운받기 3)게임 4)웃긴 게시글 검색 이었다. 나도 재미를 위해 이 도구를 활용하면서, 왜 이 학생들에겐 컴퓨터를 업무 기계로 대하게 교육했을까.
나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국제원조 프로젝트에서 과학기술과 컴퓨터는 더 잘 먹고 잘 살 수 있게 해주는 도구로서 효율성과 경제적 가치 증대의 측면에서만 다뤄져 왔다. 사실 재미가 없으면 안 할 텐데, 이전까지 그 부분에 대해 고민을 한 적이 없는 것 같아 부끄러웠다. 학생으로부터 중요한 가치를 배웠다고 생각하며, 음악을 재생하는 것부터 다시 교육하게 됐다.
안과 병원의 전자의료기록(EMR) 시스템 개발을 위한 조사작업 중 세미나 진행 |
글을 마치며, 억지스런 해외 NGO인턴쉽 활동을 허가해주시고 조언해주셔서 소중한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신 이중식 교수님과 이교구 전공주임 교수님, 그리고 강남준 원장님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리고 인도 NGO, SHIS관계자 분들께서 감사드린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다시 방문해서 정들었던 사람들 얼굴도 보고 또 다른 도움을 주고 받을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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